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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기념교회(The Church of Saint Paul at Ancient Corinth, Greece), 구 고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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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바울기념교회(The Church of Saint Paul at Ancient Corinth, Greece), 구 고린도 위의 사도바울기념교회는 구 고린도 지역에 있는 교회이다. 고대 고린도 아고라 지역에서 가깝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고라를 탐방하고 이곳에 들린다. 그래서 가끔 신 고린도의 사도바울 기념교회를 놓치기도 한다.  고린도에서 1년 6개월동안 사역을 하였던 사도 바울은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그를 끌고 가서 고소하여 비마, 즉 법정에 섰던 일로 인하여 고린도에 더이상 머물 수 없게 되자 정들었던 사역지인 고린도를 떠나게 된다. 그런데 그가 떠나고 난 후에 사람들이 바울을 따르는 자와 아볼로를 따르는 자로 분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교회가 쪼개질 위기에 처한다.  고린도전서3:3~5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등으로 쪼개진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우리는 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요 같은 사역자라고 역설하였지만 거짓 선지자들이 유대에서 온 이후 상황은 더욱 나빠져서 고린도 교회에서 사도 바울을 배척하다시피 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이런 가슴 아픈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근심어린 마음에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되는데 그것이 고린도후서이다.  고린도후서2: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천막을 손수 지어가며 세워나갔던 고린도 교회..., 사도 바울의 모든 애정이 듬뿍 들어 갔던 고린도 교회를 향한 가슴 ...

사도바울기념교회(The Church of Saint Paul at Ancient Corinth, Greece), 고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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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기념교회(The Church of Saint Paul at Ancient Corinth, Greece), 고린도   고린도에는 사도바울 기념교회가 크게 두 개가 있다. 구 고린도 아고라지역에 있는 사도바울 기념교회와 신 고린도에 있는 사도바울 기념교회이다. 위의 사진은 신 고린도에 있는 사도 바울 기념교회이다. 고대 로마식 아치형 천장과 십자가형태의 평면 구조가 특징인 이곳은 지금도 예배가 드려지고 있으며, 내부는 사도 바울과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성화가 사방의 벽과 천장에 그려져 있다.  또한 입구에는 고린도를 향한 사도 바울의 설교중 최고의 백미로 꼽히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이 벽면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고린도는 문화적, 도덕적, 영적 모든 면에서 문제가 있던 곳이었고 이런 고린도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깊은 애정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고린도전서 13:4~8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해답은 사랑이다.   

고린도 에라스도(Eras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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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 에라스도(Erastus)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은 에라스도를 전도하게 됩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의 재무관이었습니다. 그는 신분이 매우 높은 자로 권력과 재력을 모두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사도바울의 협력자였던 것입니다.  로마서 16:23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 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오늘날에도 고대 고린도 아고라에 가면  극장을 지나가는 거리의 북쪽 끝 작은 광장에 보도를 수리하는데 사용되었던 블록에 “에라스도는 자신의 재무관직에 대한 보답으로 사비로 이 보도를 놓았다”는 글귀(ERASTUS PRO AEDILITATE S〔UA〕P〔ECUNIA〕 STRAVIT)가 있습니다.  즉, 이 도로를 에라스도가 자신의 사비로 놓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이 실제 했다는 증거로써 성경의 역사성과 확실성을 더욱 잘 보여주는 고고학적인 발견입니다. 

고린도 비마(Bema) -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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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 비마(Bema) - 법정 고린도의 비마(Bema)는 고대 로마시대에 심판의 장소였던 법정을 말합니다. 비단 이곳은 법정뿐 아니라 정치 집회나 연설하는 연단등으로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바로 이 법정으로 끌고 가서 재판을 청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도행전18:12~13  갈리오 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 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이 법정에서 결국 사도바울에 대한 재판은 열리지 않고 오히려 그를 고소한 회당장 소스테네가 몰매를 맞는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만 이 법정 앞에 끌려와 재판을 받았을 사도 바울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찔 하기도 합니다.  이 법정에서의 경험은 후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그리스도 앞에서의 심판대에 대한 묘사로 이어집니다.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 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사도 바울이 비마의 심판대 앞에 서 있던 위치의 돌 위에 사도 바울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앞에 서 보았습니다. 언젠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우리 모두가 서게 될 날,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구원 받을 수 있음에 그저 주님의 긍휼을 입기 원합니다. 

고린도 회당(Corinthian Synag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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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 회당(Corinthian Synagogue) 고린도에서 복음을 증거했던 사도 바울은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서 강론하였다.  사도행전 18:4 안식 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회당 옆에 살던 디도 유스도를 전도하여 그 집에 머물게 되었을 뿐 아니라 회당장 그리스도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사도행전 18:7~8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 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 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위 사진은 고린도에 회당이 있었음을 확인하여 주는 표식이다. 저 표식 앞에 서면 사도 바울이 바로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였음을 수천년의 세월을 넘어서도 느낄 수 있게 된다. 

고린도 아고라(Korinthos 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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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 아고라(Korinthos Agora)  고린도의 아고라(Agora)이다. 아고라는 고대  도시 국가였던 그리스의 공공(公共)의 광장으로써 이곳에는 시장도 있었고, 회의, 심지어 재판정도 있던 장소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운동, 예술, 정치등 모든 분야의 내용들을 가지고 모여 북적이던 장소였다.  사도행전18장은 이곳과 관련한 사도바울의 행적을 너무나 잘 알려 준다.  사도행전 18:1~4 그 후에  바울 이  아덴 을 떠나  고린도 에 이르러 아굴라 라 하는  본도 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 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 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 와 함께  이달리야 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 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 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1년 6개월을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고린도 아크로폴리스(Acrocori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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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 아크로폴리스(Acrocorinth) Acrocorinth(아크로코리스)는 그리스의 코린토시아(Korinthosia) 지역에 위치한 약580m 높이의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요새이다. 이곳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적 지점이었고, 로마 제국 시대에는 고린도의 상징적인 요새로 자리잡았다. 사도 바울이 1세기 중반에 이 지역을 방문하여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Acrocorinth 요새에서 전투를 치르는 로마군을 목격하며 "우리의 싸움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다"는 말씀을 전했다. 고린도후서10:3~4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바울은 이후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고 '고린도전서'를 썼다. Acrocorinth 요새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전망은 바울이 이 지역을 사랑하였던 또 다른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Acrocorinth는 그리스의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 #성지순례 #아크로코린토스 #고대그리스 #신전 #요새 #전쟁 #Pilgrimage #Acrocorinth #AncientGreece #Temple #Fortress #War #UNESCOWorldHeritageSite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고린도 운하(corinth ca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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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 운하(corinth canal) 고린도 운하는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 3대 운하로 불리운다. 이곳은 서쪽의 이오니아 바다와 동쪽의 에게해를 연결하는 운하로 주후67년에 로마의 네로 황제가 죄수들까지 동원하여 운하 건설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 현대에 와서 프랑스 기술진에 의해 1881년부터 1893년까지 약12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길이 6.2km 폭25m, 수심 약 10m정도로 수에즈 운하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이 운하로 인해 약 400km 정도의 해로가 단축되었다.  #고린도운하 #CorinthCanal #그리스 #Greece #고대그리스 #AncientGreece #기술적창조물 #TechnologicalWonder #문화유산 #CulturalHeritage #관광명소 #TouristAttraction #성지순례 #PilgrimageSite

아크로폴리스(Acropolis, 파르테논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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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크로폴리스(Acropolis,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중 가장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이다.  기원전 5세기에  페리클레스 는  파르테논 신전 ,  프로필라이아 ,  에레크테이온 ,  아테나 니케의 신전  등을 포함한 현재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유적지들의 건설 지시를 내렸다. 파르테논 외에 다른 건물들은  모레아 전쟁  기간  베네치아군 의 1687년 포위 공격 때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 당시에 파르테논 신전에서 보관되던 화약이 포환을 맞고 폭발하여 많은 부분이 무너졌다. 인류가 전쟁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래 이곳은 아테네의 여신 아테나에게 봉헌된 신전이었지만 비잔틴 시대에 이곳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어 교회로 사용되어졌다. 그러다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뒤에는 모스크로 변모되기도 하였다.  #파르테논신전 #ParthenonTemple #고대그리스 #AncientGreece #아크로폴리스 #Acropolis #아테나 #Athena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UNESCOWorldHeritageSite #해외여행

아레오바고(Areopa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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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레오바고(Areopagus) 사도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설교 했던 아레오바고 바위산이다. '아레스의 언덕' 이라는 뜻의 '아레이오스 파고스'로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신의 딸 알키페를 겁탈한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오티오스를 분노에 차 죽여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무죄로 풀려 났는데 이러한 신화적 배경에 의해 이곳은 과거에 법정으로써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서 재판을 열기도 하였다. 바로 이 장소에서 사도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도 제사하는 그들을 향해 그들이 알지 못했던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메세지를 설교하였다.  사도행전 17:22 ~23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페트라 알카즈네(Al-Khazn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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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트라 알카즈네(Al-Khazneh) 페트라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도대체 고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하는 궁금증이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건축물들을 보노라면 과연 사람이 만든 것일까? 하는 의구심마져 든자. 페트라의 입구에서 약 1.2Km의 좁은 협곡을 걸어가면 나타나는 장엄한 광경, 알카즈네이다. 거대한 절벽을 깎아서 만들어 놓은 신전 형태의 무덤이다. BC 1세기경 나바테아(Nabatea)왕국의 아레타스 3세의 무덤으로 높이 43m, 너비가 약 30m에 이른다. 알카즈네라는 말은 보물창고라는 것인데 도굴꾼들이 이곳에 보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총싸움까지 별렸던 곳이다.  너무나 멋진 곳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페트라에서 알카즈네(Al-Khazneh)보다는 산꼭대기에 존재하는 알데이르(Al Deir) 신전, 혹은 수도원으로 불리는 곳이 더 감명 깊었다. 물론 온갖 장비를 다 매고 산꼭대기까지 오르는 엄청난 수고를 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알데이르는 폭이 50m, 높이 45m로 알카즈네 보다 더 크다. 당시 나타테아 왕들의 무덤으로 건설되었다고 추정되나 비잔틴 시대에는 이곳이 교회로 사용되어졌기에 이런 장엄한 장소가 교회였다는 것, 그리고 그 때 이 곳에서 드렸을 예배, 그 모든 순간들이 상상만해도 가슴 벅차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길 하레셋, 카락성(Karak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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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하레셋, 카락성(Karak Castle) 길 하레셋은 옛날 모압의 수도였다. 왕의 대로에 있는 이곳은 이스라엘과 모압등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기 때문에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는 중요한 기독교 지역이기도 하였다. 1132년 십자군시대에 발드윈 1세가 이곳을 점령하고 모슬렘 세력을 막기 위하여 이곳에 요새를 지었다.  열왕기하 3장은 이곳 길 하레셋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지배를 받던 모압왕 메사가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죽은후 이스라엘을 배신하자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유다왕 여호사밧과 에돔왕과 함께 연합하여 모압 왕 메사를 치러 가게 된다. 결국 모압왕은 전세가 불리하게 되어 모압의 수도 길하레셋이 완전히 망하게 되자 자기 아들을 성 위에서 잡아 번제로 드리게 된다. 그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 군대는 돌아가게 된다.  열왕기하 3:24~27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거라사(Ger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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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라사(Gerasa) 성경에서 일컫는 거라사 지역이다. 오늘날 제라쉬(Jerash)로 불리는 이곳은 예수님께서 이곳에 건너 오셨을 때 군대 귀신 들린 자가 와서 예수님을 맞이하였고, 예수님께서는 그 귀신을 쫓아내자 무려 2,000마리가 넘는 돼지떼에 들어가서 돼지들이 호수에 빠져 전부 몰살하였던 성경의 기록이 있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세워진 이곳은 기원전 63년 로마의 장군인 폼페이(Pompey)에게 다시 정복되면서 로마의 속주가 된다.  한때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살았고 비잔틴 시대의 교회들도 있었으나  최근 튀르키에가 지진으로 인하여 온 도시가 파괴된 것처럼  주후 749년 지진으로 인해   멸망하게 되었고 번성했던 도시의 흔적만이 남아  오늘날 ' 동방의 폼페이'로 불리우고 있다.  누가복음 8:26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 께서   육지 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 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

아르논 골짜기(Arnon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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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논 골짜기(Arnon Valley) 요르단의 그랜드 캐년이라 불리는 아르논 골짜기이다. 처음 대면하면 그 광활함에 입이 벌어진다. 해수면 아래 410m 지점에 있는 사해로 들어가는 협곡으로 약 70k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계곡이다.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고도 차이는 약 1,300m에 이르른다. 자연적으로 생긴 거대한 협곡이기에 이곳은 모압과 아모리의 경계가 된다.  민수기 21:13 거기를 떠나 아모리인의 영토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곳이라 출애굽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곳을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압과 암몬 자손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지 않으시고 이 아르논 골까지 넘어 아모리 족속의 땅을 싸워 차지하도록 말씀하셨다.  신명기 2:24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 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 과 그의 땅을 네   손 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성경 룻의 이야기도 이 아르논 골짜기를 배경으로 한다.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가 그 땅에 흉년이 들자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이 아르논 골짜기 넘어 모압 땅에 가서 살게 된다. 그러다 그곳에서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어 십년만에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다. 그 때 다시 이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게 되는데 이 거대한 협곡을 바라보며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제 모압땅 본가로 돌아가라고 눈물로 이야기 하자 오르바는 돌아갔지만 룻을 끝까지 나오미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가 한 말 "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 이 나의  하나님 이 되시리니" 이다.  당시 이 협곡을 건넌다는 것은 여인들의 힘으로 벅찬 일이었고, 다시 돌아가기 힘든 길이었다. 결...

모세의 샘(Spring of M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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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의 샘(Spring of Moses) 모세의 샘, 혹은 므리바의 우물로 불리우는 이곳은 요르단의 와디 무사(Wadi Musa) 마을 입구에 있다. 이집트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불평하자 모세가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며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치자 물이 솟아났다고 전해지는 곳이다(민 20장 10∼11절). 이곳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어쨋든 모세는 이 일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화를 참아야 하는 한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쩝 #모세의 샘 #요르단여행 # 와디무사 #성지  #SpringOfMoses, #MosesSpring, #MountNeboJordan, #JordanianHeritage, #BiblicalSites, #PilgrimageDestination, #HolyLandTourism, #JordanValleyViews, #DeadSeaScenery, #MosesMemorial.

왕가의 계곡(A King's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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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가의 계곡(A King's Valley) 투탕카멘으로 유명한 왕가의 계곡이다. 이집트 도굴꾼들의 위험을 피해 깊은 골짜기에 파라오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약1000년 경까지 500년에 걸쳐 지어진 곳이다. 이곳에 60여개 이상의 파라오 무덤들이 있다. 룩소르 근처에 있다.  여기서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무거운 카메라 매고 뙤약볕에서 걷다가 탈진하여 쓰러져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ㅠㅠ 

나세르 호수(Lake Nas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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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르 호수(Lake Nasser) 나세르 호수는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던 가말 압델 나세르가 나일강에 아스완 댐을 건설하여 만들어진 인공 호수이다.  길이 550 km ,면적 5,250 km 2 , 깊이 25.2 m, 부피 132 km 3 의 호수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나세르 호수라고 불리운다. 이 호수로 인하여 수많은 이집트의 유적들이 수몰 위기에 처했는데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부심벨이다. 아부심벨 앞에 있는 나세르 호수를 보고 있자니 홍해를 건넌 모세를 람세스 2세가 멀리서 바라 보고 있는 것 같은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네페르타리(Nefertari)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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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페르타리(Nefertari) 신전  람세스 2세의 부인으로 람세스 2세가 15세때 당시 13살이던 네페르타리와 결혼하였고, 람세스 2세가 파라오에 오르자 초기 20년간 왕비로써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 신전 옆에 그녀를 위한 신전을 따로 만들어 주었다. 양쪽 가운데에 있는 여인의 신상이 네페르타리의 모습이다. 그 밑에 작게 부조된 것은 자녀들의 모습이다.

아부심벨의 4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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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심벨의 4 신 상 아부심벨의 가장 깊숙한 곳은 성경의 지성소 같은 위치에 있다. 그곳에는  라 호라크티, 신격화된 람세스 2세, 아문 라, 그리고 어둠의 신인 프타등이 함께 앉아 있다. 재밋는 것은  1년 중 2월 22일과 10월 22일에 단 이틀만 가장 안쪽에 있는 이곳 성소에 태양빛이 약 20분간 들어와 신상을 비추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이 되면 전 세계 각지에서 이 신기한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엄청난 축제가 벌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빛이 들어오지만, 어둠신인 프타의 상에는 이 날에도 빛이 비치지 않는다. 가장 왼쪽에 있는 신이 프타신이다. 

아부심벨 초입 (Abu sim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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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부심벨의 초입 아부심벨의 입구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8개의 람세스 2세 기둥이 있다. 높이가 약20m에 달하는 거대한 입상이다.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의 모습을 한 람세스2세의 모습이다. 왼쪽의 4개는 상이집트를 다스리는 백색 왕관을 쓰고, 오른쪽 4개는 상하이집트를 통합하여 다스리는 이중관 왕관을 쓰고 있다. 조각상 뒤에는 카데시 전투와 누비아, 리비아 등의 전투 모습이 그려져 있다.